출처:박·우라늄 유노라이후, 교보 전자 서적, 2023.”사람은 제가 가지지 않은 쾌락을 즐기는 타자를 시기합니다.질투는 그것을 상하게 하는 일까지 미칩니다.통상 질투에는 다양한 알리바이가 따라붙습니다.정의의 이름으로 도덕의 이름으로 뭔가를 훼손하고 저지하려고 합니다.”(35/98)”질투에 대해서 더 섬세한 탐색과 인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질투는 나보다 우월하거나 대단한 사람을 보고 느끼는 부러움과 욕망의 차원에서 더 좋고 큰 무언가를 갖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은 없습니다.나는 필요 없으니 굳이 자신에게 하다면 안 하는데 누군가가 그것을 탐리식쯔면 불쾌하에서 얄미운 느낌, 즉” 꼴사나운 감정”입니다.아무런 이유도 없이 누군가가 싫고 밉고 계속 불편하면, 저변에서 일어나는 질투를 의심하고 볼 수 있습니다.(중략)애인 사이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찮은 일에 열중하는 파트너 하는 면에 끝까지 견딜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이때 우리는 당위와 의무, 비합리성을 들어 상대의 잉여 쾌락을 통제하거나 억압하려고 합니다.이성 관계에서는 질투심이 일하지 않겠다는 막연한 관념이 있지만 부부나 연인의 깊은 곳은 질투와 경쟁이 일하는 것이 있습니다.이 경쟁은 눈에 보이지 않는 힘 겨루기로 이어지는 관계를 피폐시킵니다”(56/98)”질투하고 내뿜는 에너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용법에 의해서 결국 관계의 갈등과 고통의 늪에 빠지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그것은 매우 깊은 곳에 들어가고, 자신은 조금도 의식하지 않거나 의식해서는 안 된다 문제가 되는군요.의식하지 않는 질투는 표면적으로는 다양한 합리화와 정당화를 낳고, 더 고통을 낳습니다”(57/98)질투는 인류 보편의 심리라고 생각한다.다만 인생이 힘들고 외로운 때 주변을 돌이켜보면 타인은 모두 아무 문제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청년들의 심리적 비관성이 자살로 이어진 연구를 보면”상대적 박탈감”이 대부분 상위에 있는 것만 보아도 우리는 남과 비교하고 상대적 우위와 상대적 박탈감·상대적 열등감을 느끼면서 살아 있는 것 같다.이때 멀리 있는 남과 비교 경쟁하기보다는, 가까이 있는 사람과 그럴 수밖에 없다.눈에 보이는 존재에 대해서 질투하는 것은 감각 접촉이 바로 열리기 때문이다.냐나포니카(Nyanaponika)스님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세상 사람들이 만든 고통의 대부분이 고의적인 사악함보다는 무지·부주의·생각 없이…경솔함·자기 제어의 부족에서 온다.한순간이라도 싫증처를 수행하거나 현명하게 올바르게 보면 연쇄적인 고민과 죄 의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p.48.- 깨끗한 소금(sati, 마음을 케어)를 통해서 행동을 잠시 멈추고 늦추고 그만두게 되면 마음은 상당히 유연하게 된 이해력도 높아진다.좋지 않은 본성은 예전처럼 자주 즉각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p.49.- 깨끗한 소금은 그냥 현재와 관계가 있다.그것은 우리가 많은 것, 즉 지금 여기에서 모든 것을 자각하고 사는 방법을 잊어 버린 것을 일러 준다.p.-붓다는 인간이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단호하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그 가운데 가장 단순하고 포괄적인 수행 법이 바로 싸처이다.렴처의 본질은 “주의를 집중시키다”라는 말로 요약된다.그것은 자신의 마음에 주의를 집중하라는 뜻이다.왜일까?마음이 고통의 세계와 그 뿌리만 아니라 병의 궁극적 소멸과 그것으로 이끄는 길(네 성체)양쪽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p.90출전:냐나포니카.송위 지역.『 불교 선수 행의 핵심 』.서울:시공사.1999.Nyanaponika Thera. 『 Theheart of buddhist meditation』(Londen:Rider&Co.1986)네 마음처(네 념처)수행의 중요성을 말했다.명상의 핵심은 “현재에 눈뜨다”, sati=mindfulness현재에 눈을 뜨고 살펴보면 문제가 드러나면서 그저 희망이 보인다.